산상수훈(19)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마태복음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1절).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제일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 기도, 헌금, 봉사, 선행 등을 행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곧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의도, 동기, 목적이 무엇인지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의 모습이 진짜 당신의 모습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때,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 앞에 설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가면을 쓰고, 포장을 합니다. 진짜 나의 모습을 감추지요. 이것을 위선, 가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위선과 가식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진짜 내 모습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지요.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마음, 나 혼자 있을 때 나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의 생활이 24시간 내내 생중계되고, 나의 마음까지 다 영상으로 송출된다면 어떨까요?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데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심지어 나의 마음, 중심까지 다 아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요. 이 사실은 우리에게 그렇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주 부담스러운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이 사실을 아주 달콤하고 행복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5절까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지식이 내게는 너무 놀랍다고 말하지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게 당연하지, 뭐가 그리 놀랍습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5절은 다윗이 이렇게 놀라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나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곧 내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지, 얼마나 거짓되고 위선적인지 다 아신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는 사람의 동기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상’입니다. 그의 ‘상’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만족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는 상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인정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그의 행위가 아무리 경건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그 사람과 그가 행한 일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을 위해 그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외식의 무서움이 여기 있습니다. 외식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이 말씀을 전한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 앞에서, 즉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 곧 나의 죄악과 추함과 약함까지도 다 아신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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