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헤세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1절).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삿 21:25). 혼란의 시대에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빵집’이란 의미의 ‘베들레헴’에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의미의 ‘엘리멜렉’은 가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을 떠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땅 모압으로 갑니다. 모압에서 ‘기쁨’이란 의미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큰 슬픔에 빠집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떠나온 고향 땅에서 소문이 들려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6절)는 소식이었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지고 빛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그저 견디고 버틸 수 밖에 없던 시절에, 언약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소식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나오미는 그 빛을 향해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뒤로하고 인간적인 소망을 품고 모압으로 온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돌아오는 이 여정의 결과는 어떨까요?
두 며느리가 나오미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이방 땅에서 평생을 과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오미는 잘 알았습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결혼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그녀들을 선대하시기를(헤세드, 8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위로)이 있기를(9절)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사시대의 특징인 혼합주의(하나님과 이방 신들의 혼합) 신앙을 보게 됩니다. 모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압 백성, 모압 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결혼을 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남았습니다. 룻에게도 돌아가라는 나오미에게 룻은 아름다운 시로 대답합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1:16-17). 룻의 말과 행동에는 ‘헤세드’로 가득합니다. 룻은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 안에서 주어지는 그분의 신실한 사랑을 알았고, 그 사랑 안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시어머니 곁에 남아 평생을 보필하며 신실한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변덕스러운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두 사람은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봅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나오미의 깊은 슬픔,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자의 슬픔과 절망입니다. 풍성하게 나갔지만 텅 비어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비참을 알고, 하나님의 징계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헤세드의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22절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오미와 룻이 돌아온 그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될 때였습니다. 빈 손으로 회개하며(22절의 ‘돌아오다’라는 단어는 ‘회개한다'의 의미도 있음) 주께 나올 때 주께서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