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사람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사무엘은 슬퍼합니다. 단순히 사울이 불쌍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심으로 인해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며 고통을 받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한 슬픔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만 슬퍼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이 있으니 그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슬퍼하는 사무엘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슬퍼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무엘과 달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해서는 거의 슬퍼하지 않고, 주로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들로 인해 슬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하여 예비하신 왕은 바로 “하나님을 위하는 왕”이었습니다(1, 3절). 사울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과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백성들을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사울에게는 하나님도 자기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왕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위하는 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그런 왕을 택하시고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십니다. 베들레헴에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고, 그 제사에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대하게 하십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사무엘 앞으로 왔고, 사무엘은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 ‘과연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외모가 아주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기준은 전혀 달랐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7절). 우리도 만약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인 어떤 것을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자격이나 조건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비록 우리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알 수 없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여서 함부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그날 이후로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합니다(13절). 사사들이나 사울과 같이 특정한 상황에 잠시 임한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로 계속 임하게 됩니다. 다윗은 사사와 같은 임시적인 통치자자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한편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임합니다. 악신으로 인해 사울이 괴로워하고, 신하들도 사울이 악신에 의해 괴로워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하들은 수금 연주가 사울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였고, 수금을 잘 타고 무엇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자’로 인정받았던 다윗을 추천합니다. 다윗의 연주를 들을 때 사울의 정신은 상쾌해졌고, 다윗은 사울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사울이 악신으로 인해 괴로워할 때 다윗의 수금 연주를 통해 그의 괴로움이 해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사울로 인해 고통받는 이스라엘 역시 다윗을 통해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하나님을 위하는 왕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아무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아름답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아름다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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