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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문답 성경공부 : 마태복음 6장

[질문1] 마태복음 6:13에 괄호 부분이 있는데, 각주에 보면 고대 사본에 이 괄호 내 구절이 없다고 나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답변1] 고대 사본은 3세기 전후 파피루스 사본, 4-5세기 대문자 사본을 말하는데, 이 구절이 거기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11세기 전후에 발굴된 소문자 사본에만 나오는 본문으로, 사본에 사본을 필사하다보니 여러 변개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괄호 내 구절은 이후에 추가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 괄호 안에 표기한 것입니다.


[질문2] 마태복음 6:13에는 없지만 성경 앞에 있는 주기도문에는 ‘대개’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서 ‘여’를 빼는 것에 대해서도)


[답변2] ‘대개’라는 한자어는 ‘이로 보건대’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이란 뜻의 헬라어 ‘호티’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을 반영하면 마지막 송영 부분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이렇게 기도하는 까닭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서 ‘여’를 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버지를 부를 때 격식있고 정중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호격조사 ‘여’를 붙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친밀한 아버지라는 것을 보다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3]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기도문에 이 내용이 있어서, 이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용서를 해야만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신다’ 혹은 ‘하나님의 용서보다 인간의 용서가 먼저다’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은데, 이것도 바른 해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답변3] 우리의 용서가 하나님께 용서받는 조건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받는 것이 우리 자신이 용서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우리의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기 위한 조건이다.’


설명을 드리면, 먼저 본문에서 ‘죄’라고 번역된 단어의 본래 의미는 ‘빚’입니다. 본문과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 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라고 하셨지요. 이 비유에서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이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동료를 가혹하게 감옥에 가둡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은 주인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마치 그런 은혜를 받은 적이 없다는 듯 동료를 대합니다.


이 종은 주인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 누리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주인이 종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라고요. 이 종이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은 자신이 주인에게 그러한 은혜를 받았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빚을 탕감받은 사람처럼 살지 못하고, 빚을 진 사람처럼 인색하게,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기억한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사함이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하는 데 달려 있는 것처럼 말씀하신 의도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는 우리에게서 멈추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우리를 통해 다른 이에게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는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시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는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죄에서 돌이키고 싶은 마음은 없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는 정직한 기도일까요?


결국 이 기도는 용서하지 않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기도가 되게 합니다(칼뱅). 하나님의 큰 용서를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하지만, 우리의 부패성과 완악함으로 인해 그런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로,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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