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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복음에 합당한 삶(1)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복음에 합당한 삶, 빌립보서 1:27



은혜와 순종의 관계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은혜(복음)와 순종(율법)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은혜와 순종을 함께 말씀하고 있는데, 얼핏 보면 둘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격 없는 죄인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때,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마음껏 죄를 짓고 엉망으로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모든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할 때,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마치 자기의 행위와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이런 염려는 타당합니다. 문제는 이런 염려의 대안으로 잘못된 해답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방종한 삶을 살까 염려한 나머지 율법에 순종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며 ‘율법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또는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하는 신자와 하나님께서 조건적으로 자신을 용납하신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더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며 ‘율법폐기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둘 다 해답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쳐주는 정답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은혜와 순종의 참된 관계는 바울이 디도서에서 복음을 요약한 말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양육하셔서 마침내 선한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게 하는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은혜와 순종을 대립하는 것으로 말하지 않고, 오직 은혜 안에서 우리의 온전한 순종이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성경대로 온전한 순종을 추구하면서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율법과 분리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게 됩니다.



합당하게 생활하라


본문에서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권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복음에 관해서는 다음 시간부터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 시간에는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합당하게’라고 번역된 헬라어 ‘악시오스’(ἀξίως)의 어원의 배경을 살펴보면, ‘저울의 한쪽 편을 높이다’, ‘평형을 이루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양팔저울을 떠올려 보십시오. 한편에는 복음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여러분의 삶이 있습니다. 바울의 권고는 “당신의 삶이 복음과 똑같은 무게가 되도록”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균형을 이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고, 우리는 그 능력으로 구원받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에게 이것은 사소한 문제도, 선택적인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일한’ 일이고, 본질적인 일입니다. 이것이 “오직”이란 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생활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폴에테우오마이’(πολιτεύομαι)의 문자적인 의미는 ‘시민으로 살다’ 입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있었지만 로마의 속주였기 때문에,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의 시민으로, 로마의 법과 생활양식에 따라 살아야 했습니다. 바울은 동일한 원리를 따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여러분은 비록 빌립보에 살고 있지만, 여러분의 진짜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하늘의 법과 하늘의 생활양식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상에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우리는 비록 우리가 진짜로 속한 곳이 아닌 (아래에 있는) 바벨론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속해 있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생활양식을 살아 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이 없지만, 이보다 더 높은 기준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도 이보다 더 까다로울 수 없고, 아우르지 않는 영역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의 권고는 ‘율법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영광스러운 천국 백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고(요일 5:3), 온유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께 배울 때 우리 영혼은 비로소 쉼을 얻을 것입니다(마 11:28-30).



호기심을 돋우는 차이점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사투리를 사용하면 고향이 어딘지 물어보게 됩니다. 예컨대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부산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살아갈 때, 세상은 마치 그와 같은 독특한 언어, 삶의 방식을 발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그런 언어를 사용하고,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보게 됩니다. 이것이 실제로 초대교회에서 왕성하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무척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에는 전도를 위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고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로 가르쳐줍니다. 신자는 비신자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비신자가 신자에게 소망의 이유를 물어볼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 3:15).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비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전도의 방법론도 없었지만, 그 어느시대보다 전도가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차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방식으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천국의 생활양식, 분위기, 억양을 너무 적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단순히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계발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에 적합하게 될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느리고 까다롭고 고된 과정을 요구합니다.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켜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일은 감추어질 수 없고,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되는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주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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