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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안에서 자아 찾기 (3) 내게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

작성자 사진: Lee JumanLee Juman

내게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계속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주어진 조건과 의무와 관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욕망에서 찾고자 하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욕망의 폭이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서울에 있는 농부의 집안에서 아들로 태어났다면, 대부분 서울에서, 농부로서, 가장이며 아버지로서 사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내가 태어난 지역, 부모님의 직업이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할 때 크게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타고난 성까지도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여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결정되는 억압적인 시대였고, 지금은 이런 구속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 내가 원하는 성취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때 느끼는 절망이 여전히 우리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답을 줍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세상의 답은 결국 “나는 내가 속한 사회(공동체)의 것이다”와 “나는 나의 것이다”라는 대답 중 하나인데요, 둘 다 내가 정말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나는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것이다”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이 사실이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삶의 목적와 이유를 가르쳐 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인 교회에 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자아는 관계 가운데서 형성되고 정착되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몸과 머리의 관계는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본문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충만하게(만족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금방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교회가 예수님을 충만하게 한다는 말은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어떤 부족함이나 불완전함이 있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교회가 그 부족함을, 불완전함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칼뱅 목사님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연합되지 않으신다면, 그분 자신은 무언가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십니다. 이것이 교회가 누리는 가장 고귀한 영광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신다는 것, 혹은 그때에야 비로소 완전하게 여겨지기를 바라심을 알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온 우주를 소유하시고, 가득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없이 나는 충만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그리스도 안에 교회가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는데, 왜 다른 모든 것으로는 주님 안에 빈 공간을 채울 수 없고, 오직 교회만이 채울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이 땅의 교회가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되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교회가 세상보다 낫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교회보다 세련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모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불신자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와 실수를 저지르는지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지만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불신자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는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만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영광, 교회의 존귀함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떠함 때문입니다. 바로 교회를 향한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왜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실 만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의 마음을 끊임없이 아프게 하는 교회를 여전히 품으시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저 다윗이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에 그저 놀라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연약하고 문제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교회를 대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못나고,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해도, 우리가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시선, 주님의 사랑은 온통 교회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누리는 가장 고귀한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에 관하여 생각하며,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가 더이상 그리스도와 자신을 분리시켜서, 개별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또한 신자는 교회와 자신을 분리시켜서 개별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신자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인 동시에 교회의 지체로서 ‘나’입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 말씀하심으로, 교회가 없이는 주님이 온전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자신의 교회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교회를 우리 자신으로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나를 생각할 수 없듯이, 교회 없는 나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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