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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사도신경 해설(11)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사도신경 11항은 ‘몸의 부활’에 관한 고백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몸은 늙고 병들고 약해집니다. 또 우리는 점차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아름다움도, 건강도 잃어갈 것이고, 세상에서 누리던 즐거움도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는 죽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진정한 위로와 소망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몸의 부활’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와 소망이 된다고 말해줍니다. 오늘은 몸의 부활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참된 위로와 소망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몸의 부활이란 무엇인가

부활이란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컨대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부활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삶이 조금 더 연장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다시 죽었고, 그의 육체는 썩고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몸이 다시 살아나되 본질적으로 변화된 몸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하는데요, 이런 의미의 부활은 예수님이 처음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5:23). 따라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몸이 부활했을 때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오늘 우리의 몸과 같은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뼈와 살이 있는 육체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질 수 있었고, 함께 식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이 아니라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몸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처음에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볼 때 외모가 달라지셨음을 알 수 있고, 종종 홀연히 나타나시거나 사라지는 모습에서, 지금 우리가 가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하늘나라에서 살기에 적합한 육체로 부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씨와 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사과나무와 사과씨는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다릅니다. 하지만 사과씨를 심으면 사과나무가 나옵니다. 지금 우리의 육체가 사과씨라면, 부활한 육체는 사과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한 우리의 몸은 지금 우리의 몸과 동일한 ‘우리’의 ‘몸’입니다. 동시에 부활한 우리의 몸은 지금 우리의 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2. 부활한 몸의 네 가지 특징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은 부활한 몸의 특징을 이 땅의 몸의 특징과 비교하면서,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부활한 몸은 썩지 않습니다. 단순히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썩지 않는다는 말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표현했습니다(딤전 1:17). 우리의 몸이 썩지 않는다는 말은 하늘에 적합한 영광스러운 몸, 곧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변화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욕되다는 말은 보통 부끄럽고 천하다는 의미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모습은 부끄럽고 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외모가 아름답지 못하거나, 사고와 질병의 흔적이 남았거나, 장애가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늙어감에 따라 모든 사람의 보편적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이 부활할 때 이 모든 부끄러운 것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바뀔 것입니다(계 21:9-21 참고).

(3)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 몸은 약합니다. 쉽게 다치고 병이 들지요. 부활한 몸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때 우리를 놀라게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모여 있는 곳 한 가운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셨고(요 20:19),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식사를 하시다가는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눅 24:31).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몸은 하늘나라에 적합하게, 새하늘과 새땅을 상속받아 다스릴 수 있는 강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신령한 몸을 영으로 이루어진 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보통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된 일을 가리킬 때 신령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부활한 몸은 성령님에 의해 유지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받기에 적합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죄된 생각과 정욕이 없는, 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몸입니다.


3.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소망

부활과 관련하여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했을 때 이 땅에서의 죄와 아픈 기억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 땅에서 나에게 큰 고통을 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요? 이 모든 것들이 천국의 온전한 기쁨을 방해하지는 않을까요? 분명한 것은 부활한 우리는 이 땅에서의 관계와 경험을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아셨고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것을 볼 때,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이 땅의 기억, 관계는 부활 후에도 유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한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서의 우리입니다.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성경은 이 땅에서의 기억이 유지되면서도(비록 그것이 죄로 인한 고통과 부끄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천국의 영원한 영광과 기쁨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런 사실은 ‘천국에서 원수같은 인간을 만난다면 어떻게 기쁠 수 있을까?’ 염려가 될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천국에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할 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부족함으로 서로를 아프게 하고, 서운하게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 날에 우리가 만날 때에는 최고의 기쁨과 사랑으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상실감들, 곧 나이가 듦에 따라 늘어가는 주름, 동시에 줄어드는 힘과 능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신뢰하고 의지하던 많은 것들도 잃어갈 것입니다. 그 절정은 죽음입니다. 죽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상실감을 완전히 보상해줄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소망이 됩니다. 그 날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십자가에서 주님의 육체가 찢겨질 때 이미 확정되었고,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사실이 날마다 잃어가며 죽어가는 이 땅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은 부활에 관하여 길게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가꾸고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님의 일에 힘쓰며 사는 것은 손해와 아픔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는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두려움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 확실히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 외모, 건강, 지식, 능력, 재산, 그리고 생명까지도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이 우리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참된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모든 것을 잃고 죽음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기쁨을 향해 소망 가운데 나아가는 삶입니다.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이런 위로와 소망 가운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청년1부 사도신경 해설(제1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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