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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세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4)

교만한 세상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가기

다니엘 4:19-33


어느 목사님께서 다니엘 4장을 설명한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걷는데 어떤 사람이 전도지를 나눠주며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가까이 오자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전도지를 줍니다. 전도지를 받으며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놀랍니다. 첫번째 이유는 약 2,500년 전 사람에게 전도지를 받았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그가 유다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4장은 매우 흥미로운 장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2-3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과 세 친구로 인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처음과 끝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 모든 나라에게 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알리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느부갓네살의 간증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느부갓네살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느부갓네살 왕의 간증의 핵심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는 것”입니다(17, 25, 32절).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사로잡아간 느부갓네살 왕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분을 높이며 찬송하고 전도하게 되었을까요?


느부갓네살의 꿈 이야기


느부갓네살이 집에 편히 있으며 평강할 때, 곧 바벨론 제국이 안정되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바벨론의 꿈 해석자들을 불러 꿈을 말해주며 해석해 보라고 해보지만 아무도 해석을 내놓지 못합니다. 꿈 해석자들의 우두머리였던 다니엘이 왕 앞에 나아오고 왕은 다니엘에 꿈의 내용을 말해줍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 땅의 중심에 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하늘에 닿을 만큼 크고 울창하여서 많은 동식물들이 그 나무를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한 순찰자가 땅에 내려와서 말하길, “이 나무를 잘라버리고 짐승과 새들을 쫓아 버리겠다”고 합니다. 결국 나무는 그루터기만 남게 되고, 철과 놋줄에 묶인 채 땅의 풀과 짐승과 더불어 있게 됩니다. 꿈의 마지막 부분에 이 꿈을 꾸게 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순찰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지요. 이것은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까지 들으면 꿈 해석의 전문가들이 이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바벨론 제국이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이제 평화와 안정을 누리게 된 이 시기에, 땅의 중심에 있는 하늘에 닿는 나무는 당연히 느부갓네살 왕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 나무가 잘려 그루터기만 남고 묶이게 된 것은 신에 의한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이겠습니다. 마지막 순찰자의 말에서 이 꿈을 꾸게 하신 이유도 설명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느부갓네살을 바벨론의 왕으로 세우시고, 바벨론을 이렇게 크고 강한 제국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무엇을 이룬 것처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으로 인해 번민한 이유는 꿈의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꿈 해석자들이 해석을 말하지 못한 이유는 느부갓네살 왕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차마 왕에게 교만하다고 말할 수 없었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왕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충언하는 것은 더더욱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니엘의 해석과 조언


다니엘도 동일한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이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여 마음이 번민하였다고 말합니다(19절). 왕은 고민하는 다니엘에게 꿈과 해석으로 인해 염려하지 말고 사실대로 이야기해달라고 말하지요. 다니엘의 대답은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하기 : 먼저 다니엘은 말합니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합니다”(19절). 꿈의 내용은 교만한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이 징계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 원수에게 하나님께서 합당한 심판을 행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악인이 심판받고 망하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진심으로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인정하지 않는 느부갓네살과 달리 다니엘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조국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이었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세우셨음을 알고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망하지 않기를, 그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2) 진리를 온전히 말하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뜻을 온전히 말하기 : 다니엘은 이 꿈의 내용이 느부갓네살이 듣기 싫어할 만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의 해석을 느부갓네살이 듣기 좋게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있는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것이 정말 느부갓네살을 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4-26절에서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대로 이 일이 왕에게 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에 걸려서, 들판에 나가 소처럼 풀을 먹고 이슬에 젖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느부갓네살은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25절).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은 후에 왕의 나라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죄와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언했을 때, 이후의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책임지십니다. 잠시 후에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진리를 온전히 말하기 - 사람의 합당한 반응을 온전히 말하기 : 다니엘은 왕이 요구한 것 이상의 대답을 합니다. 왕은 꿈과 해석을 말하라고 했지, 왕에게 무엇을 조언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 꿈과 해석에 근거하여 왕에게 간절하고 겸손하게 충언합니다. 27절에서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지금 꼭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바로 “회개”였습니다. 다니엘은 구체적으로 느부갓네살이 어떻게 돌이켜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바로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바벨론은 바벨론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약한 나라를 정복하여 빼았고, 약한 자를 노예로 삼아 착취하는 것이 바벨론의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이 다니엘의 조언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저 머리로만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특별히 우리의 이웃들을 향해서 분명한 실천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고, 예배와 기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를 열심히 해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와 가난한 자에 대한 긍휼함이 없다면 그 지식과 그 행위가 정말 하나님을 향한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


다니엘의 해석과 조언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성경은 느부갓네살의 반응을 생략한 채 이 모든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다고 말하며, 12개월 후로 빠르게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에게 충분한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충부한 시간을 주시고 기다리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어느 날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왕궁의 지붕을 거닐며 바벨론 성읍을 바라봅니다. 바벨론 성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문명이 집약된 도시였습니다. 세계 7대 미스테리 중 하나라는 “바벨론의 공중정원”에 대한 기록도 전설처럼 남아 있습니다. 크고 위대한 바벨론을 바라보며 느부갓네살은 말합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을 보며 내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고, 소유하여서 나의 영광을 나타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으시고, 그저 느부갓네살의 정신을 잠시 온전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모든 것은 더이상 느부갓네살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교만한 느부갓네살은 겸손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계시하셨고, 다니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고, 충분한 시간을 주시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자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낮추시고 비참하게 하셔서 그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입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37절).


교훈/적용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이란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이지요. 따라서 교만한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은 자기 중심성과 이기적인 자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느부갓네살을 겸손하게 하시려고 꿈으로 계시하셨을 때 다니엘이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으로 그 말씀을 적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교만한 사람의 특징의 반대입니다. 곧 하나님 중심성과 이타적인 이웃 사랑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들이 맺는 열매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타락한 세상은 본질적으로 교만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만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곧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겸손하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겸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느부갓네살에게 말하는 다니엘에게서 이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말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말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계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전하고, 그 말씀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합당한 반응(회개와 믿음)을 온전히 전해야 합니다.


교만한 세상 속에서 겸손히 말하고 겸손히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다니엘 4장은 ‘느부갓네살의 간증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느부갓네살은 어떻게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신 부분이 있는지, 또는 하나님께서 나의 어떤 점을 변화시켜 주시길 바라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2. 타락한 세상은 본질적으로 교만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겸손합니다. 교만과 겸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4장에서 교만과 관련된 구절과, 겸손과 관련된 구절을 찾아보고 왜 그런지 이야기해 보세요.

3.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하게 말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한 주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겸손하게 말하고 살아가야 할 지 이야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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