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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18) 에스더

에스더 개관 | 하나님의 부재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다

에스더 4:16

에스더 개관 예습자료

* 바이블 프로젝트 홈페이지(www.bibleproject.com/korean)에서 다운받은 자료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더 다양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에스더의 서론


에스더는 에스라-느헤미야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는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본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보다 페르시아 제국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이 더 많았습니다. 에스더서는 그렇게 페르시아 제국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에스더서의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성경이라니 이상하지 않나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와야 할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음으로 저자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고 표현한 분도 계신데요.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지만, 그럼에도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때로는 큰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침묵이 더 큰 강조의 표현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더 분명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돌보시고 인도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에스더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라고 말해 줍니다.


에스더의 구조


에스더서에는 ‘잔치’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잔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요. 그 중에서도 두 번씩 나오는 잔치에 주목하여 에스더서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베푼 성대한 두 번의 잔치(1:3-9),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을 초청한 두 번의 잔치((5, 7장), 유대인들이 생명을 구원받고 대적들을 멸하게 된 것을 기뻐하는 두 번의 잔치(8-10장)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왕의 잔치(기쁨)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잔치(기쁨)로 나아가는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구조를 생각할 때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이야기는 6장을 중심으로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를 고려해서 아래와 같이 구조를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에스더의 내용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로 시작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위대함을 자랑하기 위한 잔치였습니다. 그는 인도부터 이디오피아까지, 127개의 행정구역을 다스리는 대제국의 왕이었고, 6개월 동안 잔치를 베풀만큼 부요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왕후 와스디는 매우 아름다웠지요. 다른 건 자랑하는 일에 성공했는데, 왕비의 미모를 자랑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부름을 왕비가 거절했기 때문이지요. 왕은 분노했고, 왕비는 폐위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왕비를 뽑아야 했지요. 새로운 왕비를 뽑는 절대적 기준은 ‘외모’였습니다. ‘미스 페르시아’라고 해야할까요? 미인대회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왕후로 뽑았는데요. 에스더가 뽑혀 왕비가 됩니다. 고아였던 에스더에게는 아버지와 같이 자신을 키워준 사촌이 있었는데요. 바로 모르드개입니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기스의 증손자였습니다(2:5). 출신 배경이 중요하니 기억해 놓으세요. 모르드개는 사울 왕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때 아하수에로 왕에게 신임을 받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신하로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3:1)이었지요. 아각은 아말렉 왕의 칭호인데요(삼상 15장 참고). 하만도 왕의 후손이었습니다. 에스더서를 처음 읽었던 유대인들은 모르드개와 하만의 출신 배경을 보고 곧바로 사무엘상 15장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사울이 온전히 순종하지 않아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나온 후에 지쳐있는 이스라엘을 비열하게 공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말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영원한 대적으로 선언하셨지요. 이것이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서로를 대적으로 생각하는 배경입니다.


하만이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하만에게 꿇어 절하는데, 모르드개는 한 번을 절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발 인사좀 하라고 여러번 말해보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하며, 자신은 유대인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하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지요.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을 죽이기로 합니다. 하만은 제비를 뽑아 유대인을 학살할 날을 정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 정해진 날에 유대인을 진멸하라는 조서를 전국에 내립니다.


모르드개도 이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에게 찾아갑니다. 왕에게 가서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시길 청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법은 왕이 부르지 않은 자가 왕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암살의 위험 때문이었겠지요. 부르지 않았는데 왕에게 나아간 자가 살 수 있는 길은 왕이 금홀을 내밀 때 뿐입니다. 에스더가 이런 사정을 얘기하자 모르드개는 책망하듯 말합니다. “만일 네가 나서지 않으면 이 백성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 네 아비 집은 망할 것이다. 네가 왕비가 된 것은 바로 이 날을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정말 애써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모습이 충분히 나타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며,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죽임을 당할 수도 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에스더가 왕의 앞에 섰을 때, 왕의 눈에 에스더가 심히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왕은 금홀을 내밀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에스더는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테니 하만과 함께 오라고 합니다. 하만은 무척 기뻐하지요. 모르드개만 빼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장대를 만듭니다. 같은 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궁중일기를 가져오게 해서 읽힙니다. 그리고 이전에 모르드개가 자신을 암살의 위험에서 구해준 사실을 듣게 되고,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때 왕이 하만에게 묻지요.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만은 자기 얘긴줄 알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일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재미있는 장면인데요. 왕이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그같이 높여주라고 말합니다. 하만은 왕의 옷을 입은 모르드개가 탄 말을 끌면서 온 성을 돌아다니며 모르드개를 높여야 했지요.


이 사건으로 에스더서의 대반전이 시작됩니다. 다음날 왕과 하만은 다시 에스더의 두 번째 잔치에 참여합니다. 왕은 다시 한 번 에스더에게 소원을 묻습니다. 에스더는 자기와 자기 백성의 생명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만이 자신과 자기 민족을 다 죽이려 한다고 말하지요. 이 일로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만든 장대에 자신이 달려 죽게 됩니다.


하만은 죽었지만 왕의 인장이 찍힌 조서는 취소될 수 없기에 여전히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리는데요. 유대인들을 멸하라고 정한 그 날에 유대인들은 모여서 무장을 하고 자신들을 해치려는 대적들을 진멸하라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죽음의 날이 신원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었지요. 유대인들은 이 날을 절기로 정하여 매년 기념하였는데요. 이 절기를 부림절이라고 합니다.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 다음으로 높아지게 되었고, 그가 페르시아에 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았다는 이야기로 에스더서는 마칩니다.


에스더의 교훈


첫째,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스더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모든 일은 우연히, 사람들의 뜻과 욕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놀랍게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나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에스더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간의 책임 있는 삶을 동시에 강조합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테니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평소 왕에게 충성하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에스더를 설득했습니다.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갔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자리에서 우리도 동일하게 최선을 다해 우리의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의 삶도, 교회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에스더는 우리의 삶에 반전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하만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면서도 승승장구하는 것 같습니다. 모르드개를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힘없이 당하다가 망해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모르드개를 매달려는 장대에 하만이 달리고, 하만이 탐하는 존귀한 자리는 모르드개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대적 모두에게 깜짝 놀랄 반전의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언제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입니다. 그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상된 반전에 기뻐할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예상치 못한 반전에 슬피 울며 절망할 것입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침묵을 통해 저자가 더 크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2. 모르드개(이스라엘)와 하만(아말렉)의 관계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그것은 핍박일 수 있고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하만의 악한 의도와 계획이 실패하고 모르드개가 높아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소망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3.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며 사는 삶은 기도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삶은 선행으로 나타납니다. 기도 없는 선행은 우리를 의지하게 하고, 선행 없는 기도는 우리를 무책임하게 만듭니다. 기도와 선행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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