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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20) 욥기

욥기 개관 | 이해하기에는 너무 경이로운 것

욥기 42:1-6

욥기 개관 예습자료

* 바이블 프로젝트 홈페이지(www.bibleproject.com/korean)에서 다운받은 자료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더 다양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욥기의 서론


욥기는 우스 땅에 사는 ‘욥’이란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비슷한 시대의 인물로 보이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욥기에 나오는 여러 표현들이 창세기에서 족장들에 대한 표현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욥의 수명(140세), 가축의 숫자로 재산을 표현하는 것(1:3), 욥이 집안의 제사장 역할을 하였다는 것(1:5)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욥이 살았던 우스 땅은 가나안 동편의 에돔 지역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렇다면 욥은 비이스라엘인으로 에돔 족속과 관련 있는 인물일 수 있습니다.


욥기는 형식에 있어서는 시가서로, 내용에 있어서는 지혜서로 분류됩니다. J. I. 패커는 시는 ‘머리에서 머리로 전하지 않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우리는 욥기를 너무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욥의 심정에 공감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애쉬는 고난에 대해 질문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 관하여 말합니다. 고난에 대해 안락의자에 앉아서 질문하는 사람이 있고, 휠체어에 앉아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요. 안락의자에 앉아 질문하는 사람은 뉴스를 통해 사람들이 겪는 고난과 불행을 보며, “왜 이런 고난이 일어나는 거지?”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반면 휠체어에 앉아 “왜 이런 고난이 일어나는 거지?”라고 묻는 사람은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붙잡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욥기는 둘 중 후자의 책입니다. 욥기를 소리 내어 읽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고난 가운데 있는 욥의 마음을 느껴보십시오.


지혜서에 대해서는 시가서 개관 시간에 간단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지혜서는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도덕 법칙으로 ‘보응의 원리’를 말합니다. 의로운 사람이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사색적 지혜’는 “꼭 그렇지도 않던데?”라고 따집니다. “의로운 사람이 불행한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사악한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기만 하던걸요?”라고 항의하지요. 욥기는 ‘사색적 지혜’에 해당하는데요. 보응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 대하여 욥기는 어떤 교훈을 주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욥기의 구조


욥기의 구조는 문체의 형식을 따라 이야기체로 되어 있는 서언(1-2장)과 결언(42:7-17), 그 사이에 시로 되어 있는 대화들(3:1-42:6)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 사이에 시가 있는 ‘봉투구조’(A-B-A’)인데요, 이런 구조에서 중요한 내용은 가운데(B) 부분입니다. 당혹스러운 사실은 욥기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과 끝 부분에만 관심을 갖고, 중요한 가운데 부분은 대충넘어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취할 태도는 반복되는 이야기이니까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반복되는 논쟁을 여기에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게 하셨는지 생각하며 읽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하나님께서는 짧은 메시지로 간단히 답해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시는듯 합니다. “그 이야기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릴 거 같구나, 즉각적인 해답은 없단다.” 욥기는 매우 천천히, 아주 오래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슬픔에서 즉시 빠져나오는 길이란 없고, 아픔을 재빨리 치료하는 길도 없으며, 욥기의 메시지를 아주 간결하게 농축할 비결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42장짜리 여정을 주셨는데, 여기에 만족스러운 우회로는 없습니다. 욥기는 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는 전부 다 읽어야 하고, 천천히 그리고 깊이 묵상하며 읽어야 합니다.


욥기의 주제


욥기의 가장 많은 부분이 욥과 그의 친구들의 논쟁에 할애되고 있습니다(3-37장). 이 논쟁의 주요 관심은 “의인의 고난과 하나님의 옳으심(신정론)”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친구들은 의인의 고난이라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보응의 원리’를 철저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입니다. ‘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다. 의인은 복을 받고 죄인은 고난을 받는다. 네가 고난 받는 것을 보니 너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해. 그러니 얼른 회개해라.” 이것이 친구들의 말입니다.


하지만 욥은 결백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난을 받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친구들에게 반박하고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욥도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보응의 원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요. 그는 자신이 결백하기 떄문에 자신이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도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욥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어째서 의인에게 이같은 극심한 고난이 오는가,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는 어떻게 된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십니다(38:1-40:2, 40:6-41:34). 하나님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첫 번째 말씀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세계의 기원과 그 통제됨에 대해서, 동물들의 신비한 생태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이에 대한 욥의 답변은 “나는 작습니다”(개역성경: 나는 미천하오니)였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창조의 모든 질서 앞에서 욥은 자신의 작음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질서는 인간이 다루거나 바꿀 수 없고, 또 다 인지할 수도 없는 신비한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능력 너머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논리와 어떤 법칙 등으로 평가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웅대한 지혜와 능력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에서 하나님은 악한 두 괴물을 제시하시고 이 괴물들에 대한 통제력을 보이시면서, 하나님은 악을 시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악을 제어하고, 이 세상에 의와 선을 보장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악의 세력도 하나님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의 집행자이고, 세상의 도덕 질서의 주권자이십니다. 이 말씀에 대한 욥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욥은 자신을 부인하며 먼지와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합니다. 이는 자신이 아는 줄 알고 많은 말을 했던 하나님의 ‘질서’, ‘정의’라는 것이 사실은 “자신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경이로운 것”(욥 42:3, “things too wonderful for me” in NIV)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지혜와 공의를 가지고 계신데 반해 욥은 극히 제한된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욥기의 메시지


첫째, 하나님이 세계를 운영하시는 방식은 불가해하며, 인간의 인지로는 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응의 원리 또는 그 반대의 원리 따위의 단순한 규칙으로 법칙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이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하나님의 운영이 불가해하다고 해서 세계의 질서가 혼돈스럽고, 악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인지로 다 이해되지 않고, 설명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는 장소입니다.


셋째, 이유도 모른채 극한적인 고난을 받고 이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나 선하심마저 믿을 수 없는 절망적인 처지의 욥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십니다. 함께 하신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하나님은 욥과 함께 계셨습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보응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원리인데요. ‘보응의 원리’에 대해 욥의 친구들은 어떻게 이해했나요? 욥은 어떻게 이해했나요? ‘보응의 원리’에 대해 욥기가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2. 욥기는 우리에게 고난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갖게 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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