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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46) 신구약 중간사(3)


유대교 분파들

마카비 혁명을 통해 유대인들이 독립을 쟁취하고 하스몬 왕조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익숙하게 보는 그룹들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임명되지 않고, 정치권력자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보면서 마카비 혁명에 참여했던 경건한 유대인들(하시딤)은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요, 어떤 이들은 순수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며 광야로 나갔고(에세네파), 어떤 이들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지킬 것을 강조하였습니다(바리새파). 그런가 하면 지배 세력이 요구하는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세운 대제사장 주변에서 기득권을 형성해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사두개인). 이후 유대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는 로마의 통치에 저항하며 독립을 염원했던 이들도 생겨났습니다(열심당). 이들이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중요한 분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신약성경에는(특별히 복음서와 사도행전) 이 분파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도 유대 사회에 있었던 분파들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교 분파들에 관한 내용은 주로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작들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주후 37년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주후 100년 경 로마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마티아스는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었고 어머니는 하스몬 왕가의 친족이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좋은 가정 환경 속에서 교육을 잘 받았고, 어려서부터 유대교의 분파들을 두루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충분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요세푸스는 한때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로마 황제를 위해 일했으나 생애 후반기에는 로마의 후원 아래 유대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전념합니다. 그의 역사 기록에는 이런 친로마적 성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참고하며 비평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인구는 50-60만 명 정도, 예루살렘의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로마 제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은 300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바리새인은 6천 명 정도, 에세네파는 4천 명 정도, 사두개인과 열심당원은 수백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에세네파와 사두개파는 주로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 살았고, 바리새파도 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였지만, 갈릴리에도 다수가 살았습니다. 열심당은 대부분 갈릴리 지역에 살았다고 합니다. 이제 각 분파들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리새파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은 ‘구별되다, 분리시키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라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교를 박해할 때 이스라엘 안에는 ‘하시딤’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시딤’은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그들을 율법에 대한 열심이 특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이 ‘하시딤’에 속한 사람들 중 일부가 분리되어 독자적인 분파를 형성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하스몬 왕조가 왕과 대제사장직을 겸직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등장하였고, 그 결과 하스몬 왕조로부터 오랜 시간 배척되고, 정치적 박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은 민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고,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바리새파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치권력자들의 헬레니즘 정책에 반대하다가 심한 박해를 받곤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구약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민족 고유의 유대 신앙을 철저히 고수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최후 심판, 천사와 영들의 존재 등 좋은 교리를 가지고 있었고, 율법을 실용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여서 당시 백성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강조하는 것에서 더 나가서 조상들의 전통을 율법과 동등하게 또는 율법보다 더 강조하는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철저히 지키려는 열심은 그렇지 못한 다른 백성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고 의로운 신자라 생각하게 했고, 그렇게 백성들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율법의 참된 의미보다 율법 준수 자체만을 강조하다 보니 외형적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듯 보였으나, 정작 그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공경하지도 않는 불신앙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시면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라고 말씀하셨고, 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두개파

사두개인이라는 이름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짐작됩니다. 그러나 사독의 후예들로 구성된 혈연 공동체는 아니고, 다른 분파와 마찬가지로 사두개인의 사상과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두개파는 주로 신분이 높은 제사장과 부유한 귀족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은 대제사장 주변에서 기득권을 형성하며 성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행 5:17 참고).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기관은 ‘산헤드린’(공회)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고위 제사장들과 장로들, 바리새파 율법학자(서기관)들과 일부 평민들 등 총 71명으로 구성되었고, 의장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산헤드린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이렇듯 대제사장과 사두개파는 유대 권력의 중심에 있었는데, 그들은 당시 유대를 지배했던 세력들을 따라 헬레니즘 사상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훗날 로마의 통치를 받을 때도 동일했습니다. 사두개파는 매우 정치적이었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중심으로 폐쇄적 집단을 형성했고,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는 배타적이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사두개인은 당시에 아주 불친절하고 인기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매우 이기적이었고, 정죄하기 좋아했으며, 자선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는 여러 면에서 바리새파와 대조됩니다. 바리새파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회당 중심으로 활동하였다면, 사두개파는 대제사장과 함께 권력의 편에 서서 성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바리새파가 민족주의적이라면 사두개파는 사대주의적이었습니다. 바리새파가 율법과 함께 조상들의 전통을 강조한 반면, 사두개파는 구약성경 중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하였고, 예언서와 성문서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영감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사두개파의 신앙은 매우 현세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천사와 영들의 존재,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오경에는 그런 사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사두개파는 율법학자들(랍비)과 논쟁하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예수님과도 부활에 관하여 논쟁하였었습니다(막 12:18-27).


이렇듯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매우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일에는 마음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6:1에서 그들은 함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였고,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마 16:6)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교훈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에세네파

에세네파는 마카비 혁명 이후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변질에 실망하여 광야로 떠났던 경건한 유대인(하시딤)들에게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세네’라는 명칭은 아람어로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리새파와 에세네파는 하시딤에서 출발했고, 율법의 준수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세네파는 광야에 은둔하면서 배타적이고 엄격한 신앙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생활, 금욕적인 삶을 추구했고, 대부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들만의 입교의식, 정결예식 등 독특하고 엄격한 규정을 지켰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에세네파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에세네파라는 이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광야에서 활동했던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사해의 서쪽 해안가 절벽에 위치한 쿰란 동굴에서 엄청난 양의 사본 및 파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11개의 동굴에서 1,000여개의 문서를 발견했는데요. 주로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된 구약성경, 외경, 위경 등이었습니다. 주전 3세기에서 주후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이는 이 문서들 덕분에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성경을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해 사본(쿰란 사본)을 남긴 쿰란 공동체가 바로 에세네파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습니다.

열심당(젤롯인)

열심당(젤롯)은 ‘열성분자’라는 뜻으로, 요세푸스는 열심당을 유대교의 네 번째 분파로 소개합니다. 주후 6년 경 갈릴리 사람 유다는 로마 황제가 세금 징수를 위해 인구 조사를 지시한 것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한 단체를 결성하였습니다(행 5:37 참고). 바로 열심당입니다. 이들은 로마의 통치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며 무력 투쟁까지 불사하였습니다. 이들은 본래 바리새파 출신으로, 무력을 사용한 저항을 제외하면 바리새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열심당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 외에 누구에게도 복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로마 황제에게 극렬히 저항했고, 로마 정부에 세금 바치는 것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셀롯인 시몬이 있는데요(눅 6:15), ‘셀롯인’이란 말이 ‘열심당’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 마태는 로마 정부를 대신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는데요. 전혀 상반된 두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이 참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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