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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71)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개관 | 교회 안으로 교묘히 들어오는 세상

베드로후서 1:1-11


베드로후서의 서론


베드로전서를 써보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여전히 로마에 있었던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순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1:14). 그래서 유언적 의미가 담긴 이 두 번째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요(3:1), 이를 통해 베드로전・후서의 저자와 수신자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떠난 후의 교회를 생각하며 베드로전서에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말을 보완하고자 두 번째 편지를 기록하였는데요. 베드로전서는 세상 속의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잠시 죄로 가득하고, 부패하고, 사라져버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세상 속에서 교회는 거룩한 제사장, 증인,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러한 삶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고난과 핍박이 있기에,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격려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 사도는 교회가 세상 속에 있기만 한 것이 아니고, 교회 안으로도 세상이 얼마든지 침투해 들어올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교회는 홍수 심판 때 노아의 방주와 같아서, 부패한 세상의 물결 위를 지나가며 거센 파도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세상의 거센 파도에 부딛히고 흔들리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세상의 물결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상의 거짓되고 부패한 물결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의 영적 생명과 거룩한 본질을 위협하는 것이 정말 무서운 문제입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교회 안에 넘쳐 들어온 세상의 거짓 가르침과 부패한 삶에 대해 강력히 경고함으로, 교회를 일깨워 생각하게 하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이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3:1-2).


베드로후서의 내용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과 그들을 통해 주신 성경 : 베드로후서는 세 장으로 이루어진 짦은 서신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성도들에게 인사를 전한 후에(1:1-2), 베드로전서의 내용을 상기시키듯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삶에 관하여 전합니다(1:3-11). 사도는 이미 진리에 서 있는 성도들이 계속해서 진리 안에서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1:12). 그래서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자신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이러한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살아서 말할 수 있는 지금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전한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1:16)에 관한 메시지는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임을 밝히며, 예수님께서 거룩한 산 위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셨을 때 하늘에서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이 직접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직접 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확실한 말씀이 있는데, 바로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성경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3:2) 곧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구주께서 사도들을 통해 명하신 것’(3:2)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 그 받은 지혜대로 쓴 편지’(3:15-16)를 말합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성경을 강조하며, 이 성경을 개인이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까닭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거짓 교사들과 그들이 가르치는 거짓 교리로 인해 교회 안으로 세상에 속한 것들, 곧 거짓된 가르침과 부패하고 방탕한 삶이 들어오게 되었기에, 베드로는 이제 이 거짓 교사들과(2장),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3장)에 관하여 경고합니다.


거짓 교사들과 거짓 교훈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을 다양한 명칭으로 부릅니다. 먼저 그들은 거짓된 교훈을 전하기에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2:1)이라 불립니다. 내용은 없고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것이기에 그들은 물 없는 샘, 광풍의 안개(2:17)와 같습니다. 그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조롱하기에 무법한 자(3:17)요, 조롱하는 자(3:3, 기롱하는 자)입니다. 자신도 죄악을 행할뿐 아니라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여 저주를 받게 하는 저주의 자식(2:14)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들을 값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2: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는 것은 곧 멸망을 의미하기에 베드로는 이것을 멸망하게 할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가르침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는 거짓 교훈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매를 통해 나무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멸망할 이단적 교훈, 곧 예수님께서 값주고 우리를 사셨다는 복음을 부인한 자들의 삶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는 삶’(2:10)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먼저 음란하고 방탕한 삶, 탐욕스러운 삶을 살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인 것처럼 미혹하였고, 여러 사람들이(2:2) 그런 미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거짓 교사들은 사람들의 욕심을 부추겨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었습니다(2:3). 베드로는 이런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멸망을 취하여(2:1), 멸망 가운데서 멸망 당하게 될 것입니다(2:12). 그러므로 이들은 '멸망의 종’입니다(2:19).


둘째, 거짓 교사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부정하였습니다(3:4). 그들은 ‘세상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데,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3:4)라고 말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지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적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3:5-6). 동일한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아직까지 심판을 미루시고 세상을 보존하고 계실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3:9).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모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날,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마땅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3:11-12). 그 날은 악한 세상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지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고,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아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 성도에게는(1:1-4),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스럽게 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굳게 믿으며, 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며 그리스도를 아는일에 게으르지 않고 더욱 힘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1:5-10). 그렇게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1:11).


나눔을 위한 질문


세상 속에서 교회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지 않도록 지키고,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을 분별하여 교회에게 주신 생명과 본질을 잘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에게 주신 생명과 본질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가 힘써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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