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73) 요한이서

요한이서 개관 |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사귐

요한이서 1-13


요한이서의 서론


요한이서는 구약과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요한이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고, 편지에서는 자신을 ‘장로’라고만 소개합니다. 편지의 수신자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인데요, 이것은 교회와 성도를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이요(1절),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는 대상입니다(5절).


요한이서에는 편지의 구조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인사말인 서론(1-3절)과 결론(12-13절) 그리고 본론(4-11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론의 인사말에서 요한은 수신자 교회를 향해 자신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 사랑의 이유는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2절). 앞서 요한일서에서 이것을 가리켜 ‘사귐’(코이노니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복음 진리에 함께 참여하여 사랑의 사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모든 교회가 계속해서 바른 진리 안에 거하며, 서로 사랑하여서 이 사귐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12절) 요한이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이서의 내용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귐은 진리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진리와 사랑으로 사귐”이 요한서신 전체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세 개의 서신 모두 진리와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는 이 주제를 제시하고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이 주제를 적용하는데, 이때 요한이서에서는 ‘진리’가, 요한삼서에서는 ‘사랑’이 보다 더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이서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교제를 가져야 하지만, 진리를 거스르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는 한계선을 분명하게 그어줍니다.


이 주제가 서론부터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절에서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라는 말씀은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요”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에 더 자연스럽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진리 안에서’의 사랑이어야 함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2절 전체는 ‘진리’에 대한 묘사인데, 이 진리는 1절에서 말하는 사랑의 이유이고 근거입니다. 우리는 참된 복음의 진리 때문에 사랑하고, 이 진리에 근거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본론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먼저 4-6절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계명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4절).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행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6절).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즉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계명, 곧 진리에 따라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7-11절은 이 진리를 미혹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미혹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함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입니다(요일 2:22; 4:2; 5:5 참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이고, 그 안에 하나님도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9절).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고, 복음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어서 다른 성도들까지 미혹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요한은 “너희는 너희 자신을 살피라”(삼가라, 8절)고 권면합니다. 교회 안에 복음을 부인하고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고 전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먼저 살펴서, 자신과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렇게 해야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일한 것’이란 사도들의 복음 사역, 곧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의미합니다. 거짓 교 교훈에 미혹된다는 것은 곧 참된 복음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이 복음을 따라 살아갈 때 주어질 상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미혹하는 자들을 발견하였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은 이 참된 복음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다가오는 자들을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미혹하는 자로 드러난 사람과 인사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을 다른 성도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 저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교훈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이 미혹되어 복음에서 떠나게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는 미혹하는 자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성도의 교제(사귐)은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는 자와의 관계를 끊고, 참된 복음의 진리를 가진 사람과 연합하여 사귀는 것이라는 요한일서의 주제를 상기시켜 줍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마음은 단순히 어떤 정보와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복음의 진리에 함께 참여하여 사랑으로 교제하는 성도들과 만나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교제하여 이 사귐의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하길 원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썼을 때는 너무 연로하여 먼 곳으로의 여행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할 수만 있으면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교제하고 싶은 사랑의 마음으로 요한은 이 편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이서는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13절)라는 끝인사로 마칩니다. 1절에서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가 수신자 교회라면, 사도 요한과 요한이 속한 교회는 같은 믿음으로 한 형제 자매된 교회입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라 하더라도 같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는 교회라면, 한 형제 자매요,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사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교회입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기독교와 교회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아무 제한이 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진리’라는 한계 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교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늘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조회수 75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