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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74) 요한삼서

요한삼서 개관 | 사랑 안에서 형제를 영접하라

요한삼서 1-15


요한삼서의 서론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모두 ‘진리와 사랑’을 언급하지만, 강조점은 서로 다릅니다. 요한이서가 그리스도의 교훈 즉 진리를 강조한다면, 요한삼서는 형제를 영접하고 서로 연합하는 사랑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이서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훈보다 앞서 나간 사람들이(요이 9절)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요이 7절) 문제에 대해서, 이렇듯 진리에서 벗어나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과 연합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 요한삼서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진리 안에 있는 형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요삼 9절) 문제에 대해서, 진리 안에 있는 형제를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이서에서는 ‘진리, 계명, 교훈’이 중요한 용어들이었다면, 요한삼서에서는 ‘사랑, 영접, 선행’이 핵심 용어들로 나타납니다. 정리하면, 요한이서의 메시지는 “진리를 지킴으로 교제 안에 머물라”고 요약된다면, 요한삼서의 메시지는 “사랑 안에서 형제를 영접하라”는 메시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에 함께 참여하여 ‘사귐’을 갖게 된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를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삼서의 내용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요한은 가이오를 향해 “참으로 사랑하는 자”(1, 2, 5, 11절)라고 부릅니다. 요한이 이렇게 애정하는 가이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가이오에 대에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란 것입니다(3절). 이 사실이 요한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회심한 성도들을 자녀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그러한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가이오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요한삼서는 가이오를 향한 요한의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


여기서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길 간구한다’는 축복의 간구는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잘 행하고 있는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더욱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론(5-12절)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요한은 긍정적인 예와 부정적인 예를 반복해서 설명하는데요, 먼저 이 일에 모범으로 가이오의 선행을 격려하고 칭찬합니다(5-8절). 그리고 반면교사로서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들어 경고합니다(9-10절). 본론의 소결론에 해당하는 11-12절에서는 다시 한 번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11절), 이어 가이오와 같이 진리의 증거를 받는 데메드리오의 긍정적인 예를 들며 권면합니다(12절).


이제 본론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이오는 복음의 진리를 잘 믿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고백하는 진리 안에서 행했습니다. 그것은 가이오가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한 어떤 일을 가리키는데요. 여기서 나그네 된 자들이란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던 순회설교자들을 가리킵니다. 가이오는 이런 순회설교자들을 사랑으로 영접하여 잘 대접하였고, 또한 이들이 계속해서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파송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순회설교자들이 어떤 사례도 받지 않고 이방 지역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전도 방식을 따라 이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마 10:9-11 참고). 가이오 또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의 사역자들을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신실한 일’(5일)입니다. 즉 믿는 그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이렇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정말 믿는 성도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이 사랑을 받은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협력하게 됩니다(8절). 즉 누군가는 바르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고 다른 누군가는 복음 사역에 전무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협력하는 일에 힘씀으로 이 복음 사역에 함께 동참합니다. 그렇게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져 갑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가이오와 같은 사람들만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디오드레베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을 비롯한 복음의 사역자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을 악한 말로 비난하였고, 자신이 대접하지 않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대접하는 사람들도 못하게 하려고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디오드레베의 이런 행위는 진리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품과 관련이 있었지요. 그는 “자기가 최고가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디오드레베가 순회설교자들을 영접하지 않고, 또 영접을 반대한 이유가 그가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이유는 알기 어렵습니다. 학자들은 디오드레베가 유대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이방 선교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는 성도들의 관심이 순회설교자에게 향하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만 있기를 바라서 그랬다고 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7절) 복음을 전하는 순회설교자들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한 것은 교회의 진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맞서 자신이 머리가 되고자 하는 무서운 일이 됩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라고 말하면서, 가이오와 같이 진리의 증거를 받는 데메드리오를 언급하면서 선을 행하는 자를 본받을 것을 권면합니다. 진리 안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같은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으로 영접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하고 형제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가이오와 데메드리오를 본받아 진리 안에서 선을 행하는 일에 힘쓰고, 악을 행하는 일을 멀리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요한삼서의 맺는말은 요한이서의 맺는말과 비슷합니다. 사도 요한은 쓸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먹과 붓으로가 아니라 속히 만나서 대면하여 직접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13-14절). 이는 성도들을 향한 사도 요한의 사랑의 마음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인사합니다.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문안하라”(15절). 신앙의 친구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언제나 큰 도움과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우리의 친구들, 특별히 신앙의 친구들이 언제나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주 안에서 그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살아갑시다.


나눔을 위한 질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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