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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흐트러짐(1) : 흐트러짐이란 무엇인가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22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7:35).

들어가는 말

이 책은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본문 말씀은, 신자들이 이 세상 그 누구 못지않게 자주 마음먹으면서도 실패하고 마는 ‘결심’을 보여줍니다”(19). 이 결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저에게도 해당되는데요. 여러분과 이 책을 함께 살펴보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예배하고 기도해야지 결심하지만, 흐트러짐 없이 온전히 집중하여 예배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기간에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분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차드 스틸 목사님의 책 ‘흐트러짐’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사실 흐트러짐은 매우 심각하고 치명적인 죄입니다. 오늘은 이 죄가 왜 그렇게 심각한 죄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흐트러짐이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7장 35절의 주된 가르침은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입니다(21). 흐트러짐은 예배와 같은 직무를 수행할 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헤매는 것을 의미합니다(22). 저자는 이러한 흐트러짐을 네 가지로 묘사합니다.

(1) 목적 없이 떠돌아다님 : 흐트러짐은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예배할 때 마음 속에서 어제 본 유튜브 생각하다가, 이번 주 계획을 세웠다가, 저녁엔 뭐 먹을지 생각하며 목적 없이 생각을 펼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덕스럽고도 복잡한 상상을 헤아리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의 자취를 뒤쫓는 일이 쉬울 것입니다”(23).

(2) 마음 속에서 은밀히 이루어짐 : 흐트러짐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 죄가 치명적인 이유입니다. “흐트러짐과 관련된 이 은밀함은 본질적으로 ‘외식의 죄’입니다”(23). 마음의 은밀한 죄가 무서운 이유는 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물론 우리 자신도 속이게 됩니다.

(3) 하나님을 멀리 있는 분으로 여김 : 이렇게 예배 때 “우리의 마음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한다는 의미”(24)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지 않고 멀리 계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 예배를 멈춤 : 예배를 드리는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 때 그 사람은 더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마음 속으로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예배를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흐트러짐의 본질

우리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원인들은 다양합니다. 사탄의 방해 때문일 수도 있고,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도 우리 마음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많은 경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공상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극의 영향도 큽니다. 사람들을 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는 생각도 다양합니다. 그 자체로 선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할 때도 있고, 악한 생각은 더할 나위 없이 우리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무엇이고,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흐트러짐은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큰 죄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예배의 의무를 감당하면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지 않고 그 어떠한 경우에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예배에 임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33).

“비록 새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가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지만, 새가 머리 위에 앉거나 머리카락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41). 우리도 갑자기 헛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런 생각이 우리의 영혼에 슬며시 안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흐트러짐에 있어서는 가장 경건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신 대로 그 영혼이 하나님을 성실히 따른다면, 설령 예배 중에 흐트러진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곧 회복되는 것은 물론이요, 이를 통해서 유익을 얻게 되고 그 후에는 더욱 큰 열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41).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길 의무

우리가 정말 흐트러짐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합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완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본질과 신실함에 있어서 우리는 온전하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요구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새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새 영을 주시고,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여 살처럼 부드럽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겔 11:19).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과 열심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기는 의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필요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입니다”(47).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본질적인 의무가 아니라, 하면 좋고 안해도 괜찮은 문제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가 우리의 의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흐트러짐 없이 예배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혼 없는 육신은 시체에 불과한 것처럼, 흐트러진 마음으로 드리는 엄숙한 예배 역시 시체만 남은 의무일 뿐입니다”(48).

왜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하는가?

우리는 왜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인가요? 우리는 그 이유들을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본성 때문에 :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이 이것을 변호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거룩하심, 전지하심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크고 위대하신 분이기 때문에 더욱더 존경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 새악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주시하고 계신데, 어떻게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2) 예배의 본질 때문에 : 두번째 이유는 예배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합리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실리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장 비합리적인 일입니다”(61).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속 마음이 다르다면 거기에는 일관성도 합리성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의 육체만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으로 마음을 다하여 예배할 때 영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기쁜 예배입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무미건조한 예배가 되고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즐겁게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 상태의 본질 때문에 : 세번째 이유는 우리의 본질적인 상태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처럼, 우리 영혼의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도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마음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영혼 없는 죽은 몸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켜주는 강물과 같습니다. 흐트러짐은 이 강물을 마르게 합니다. 흐트러짐은 우리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이르는 것을 막으며, 영적 교제를 가로채고 영혼을 굶주리게 합니다. 사실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예배하여도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에는 부족합니다. 하물며 마음이 없는 예배는 어떻겠습니까?

(4) 흐트러짐의 본질 때문에 : 네번째 이유는 흐트러짐의 본질에 있습니다. 흐트러짐은 우리의 마음을 나눕니다. 두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둘 중 하나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흐트러짐은 예배를 헛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없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흐트러짐은 예배에 대한 죄로 이것은 매우 무거운 죄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죄를 짓는 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죄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해 구별된 장소에 나온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에 범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 흐트러짐(리차드 스틸, 지평서원), 19-87페이지를 요약/정리하여 나눈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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