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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10718 룻의 구속자 보아스

룻 4:1-12

나오미와 룻의 구속을 거부한 무명의 친족(1-8절)

룻기 4장은 보아스가 룻을 어떻게 구속하였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구속하기 위하여 베들레헴 성문으로 올라갔습니다(1절). 고대 사회에서 성문 앞 광장은 여러 거래들과 재판들이 이루어지던 공적인 장소였습니다. 마침 엘리멜렉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자 기업 무를 자가 성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1절). 보아스는 그를 불러서 앉히고, 또 성읍의 장로 열 명을 증인으로 세웠습니다(2절). 보아스는 그 사람에게 나오미의 소유지를 사서 그 집을 구속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3-4절). 그 친족은 “내가 무르리라”(4절)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보아스는 그 친족이 나오미의 땅을 구속하고자 한다면 그의 며느리 룻도 함께 구속하여 룻과의 사이에서 낳게 될 자녀에게 그 유업을 잇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5절).

그러자 그 친족은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6절)고 선언하고는, 그 증거로 그의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주었습니다(7절). 자신의 신발 한 짝을 벗어주는 것은 구속자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고 양도한다는 증거였습니다(신 25:8-10). 아마도 그 친족은 자기가 나오미의 밭을 사면 나오미가 사는 동안에는 나오미가 그 땅의 소산을 취해서 살다가, 나오미가 자녀 없이 죽게 되면 그 땅이 온전히 자기와 자기 가문에 속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친족은 처음부터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나오미를 구속하고자 했던 것이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으로 또는 나오미와 룻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오미를 구속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어쩌면 가장 큰 도전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위하려고 합니다. 끈질긴 자기중심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남기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자 해야 합니다. 룻기의 저자는 룻을 구속하기를 거부한 이 친족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저 “아무개”로 남았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구속한 보아스(9-10절)

하지만 보아스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여 온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구속하기 위하여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습니다(1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을 구속하는 일은 시간과 물질만 많이 들어가는 부담되는 일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많은 돈을 주고 땅을 구속해야 했고, 그렇다고 해서 그 땅이 자신의 땅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을 구속하기로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율법(계명)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으로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을 구속하고 룻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정하고 베들레헴의 장로들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는 것과 또 모압 여자 룻을 자신의 아내로 취하여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9-10절). 보아스의 이 말은 신앙과 사랑에서부터 나온 말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많은 돈을 들여서 엘리멜렉 가정에 속해 있던 모든 땅을 구속하였습니다. 누군가를 구속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자여야 했습니다. 가난한 구속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구속자 보아스는 모든 것에 부요하신 구속자, 완전한 구속자를 가리켜 보여줍니다. 우리의 구속자 역시 부자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의 구속은 너무 값비싸기 때문입니다(시 49:6-8).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으니, 우리의 구속자는 온 천하를 억 만 개 합친 것보다 더 부자여야 합니다. 그런 분은 단 한 분,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신 자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셔서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신 분입니다(고후 8:9).

룻과 보아스에게 쏟아진 축복(11-12절)

보아스가 나오미의 집을 구속하고 룻과 결혼하는 것이 확정되자 베들레헴 성문에 있던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은 다함께 기뻐하며 그 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11-12절).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온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지극히 개인적인 사업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나만 행복하고 나만 좋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하고도 영적인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결혼이 교회의 기쁨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을 통해 경건한 자손이 번성하고 교회를 더욱 흥왕하게 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대로 귀하게 쓰임 받는 가정이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룻과 보아스를 향해 축복하면서, 먼저 룻을 향해서는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11절).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아내로 이스라엘 지파의 시조가 되는 열두 아들들을 낳아 이스라엘 집을 세운 여인들입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고, 라헬의 언니였던 레아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 맏아들인 르우벤을 포함해서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를 낳았습니다(창 29:31-35).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으니 얼마나 복 받은 두 여인입니까! 룻도 이렇게 교회를 흥왕케 하는 복된 여인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보아스를 축복하면서, 보아스의 집이 그 믿음과 사랑과 선행으로 에브랏, 곧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11절). 또한 여호와께서 보아스의 집에 후사를 주셔서 그의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하였습니다(12절). 우리는 이 말을 들을 때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쉽습니다.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로,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베레스가 태어난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창 38장). 비록 인간적으로는 부끄러운 것이 많은 유다였고 게다가 다말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복을 주셔서 번성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낳은 쌍둥이 아들 중 첫째가 베레스였는데(창 38:29), 그렇게 해서 유다 지파는 멸절되지 않고 번성하게 되었고,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열두 지파 중에 가장 수도 많고 가장 용맹했습니다(삿 1:1). 이처럼 룻도 모압 여인이고 나오미의 가정에도 부끄러운 것이 많이 있었지만, 보아스와 룻의 가정이 번성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흥왕케 하고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부요하고 신실하고 자비로운 구속자 보아스가 가리키고 있는 우리의 영원한 구속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는 부요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모든 비참과 가난에서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이 구속자를 더욱 사랑합시다. 또한 우리도 이 구속자를 닮아서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낮아지기도 하고 가난하게도 되고 희생도 마다하지 맙시다. 우리는 룻의 구속을 거부했던 무명의 친족과 같이 되지 맙시다.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을 벗어버립시다. 또한 우리의 결혼과 가정이 룻과 보아스의 결혼과 가정 같이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 가운데 번성하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귀하게 쓰임을 받으며, 교회의 기쁨이 되며, 교회를 흥왕케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되며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단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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