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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30205 말씀과 성례와의 관계

최종 수정일: 2023년 2월 11일

고린도전서 11:23-29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속하심을 받아 그분의 백성과 자녀가 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제정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를 바로 알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례 이 두 가지를 통상적 은혜의 방도(방편, 수단)로 쓰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달해 주시고 확증해 주십니다.


‘성례’(sacrament)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신약에서 제정해 주신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를 다른 의식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의식들로 제정해 주셨고, 또 시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를 ‘성례’라고 일컫는 성경적 근거는 확실합니다(마 28:19; 고전 11:23-26).


성례란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의 은혜를 세례와 성찬이라는 이 두 가지 특정한(거룩한) 의식(rites, ordinance)을 사용하여서 우리에게 나타내며 인치시는 것입니다(롬 4:11; 창 17:11).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은혜 언약의 표와 인으로 성례를 제정하셔서 이 성례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시고(표로) 확증(인으로)하십니다.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직접 제정되고 시행하라고 명령하신 거룩한 의식들(성례들)은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뿐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8문). 세례와 성찬에서 사용되는 물질적 요소들과 가시적인 표지들은 세례에서는 물과 물로 씻음이, 성찬에서는 빵과 포도주와 이것들을 먹고 마심이 사용됩니다. 이 물질적 요소들과 그것을 사용하여 씻기고 먹고 마시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구원의 은혜를 밝히 나타내고 확증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6문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2문은 이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례의 의미와 성찬의 의미는 제정하시는 말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례는 복음 약속(구원의 약속, 은혜 언약)의 표(표시, 표지, sign)와 인(봉인, 보증, 확증, 도장, seal)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세상 끝날까지(어떤 의미에서는 영원히) 어떤 상황에서도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복음 강설(하나님의 말씀 설교)과 함께 성례(세례와 성찬)를 집례하도록 말씀의 사역자들(목사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역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공적으로 받아들인 신앙표준서들(교리 표준서들)을 잘 알고, 건전한 교리에 입각한 성경 해석과 적용 곧 건전한 설교를 해야 할뿐만 아니라, 성례의 의미를 바로 알고 성례를 바르게 집례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배우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특별한 복(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에베소서 1장 3절)은 하나님의 전적 은덕으로부터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으로 그의 구원의 은택들을 나누어 주실 때에 통상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도(방편, 수단)가 말씀과 성례입니다. 신비주의자들(혹은 신령주의자들)은 기록된 말씀(성경)과 성례(세례와 성찬)를 과소평가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말씀(성경)을 최우선적인 탁월한 은혜의 방편으로 보지 않고, 구원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세례와 성찬에 매여 있다고 생각하고 성례를 과대평가하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은 교회가 아니라 ‘오직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탁월한 방편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공적으로 강설될 때뿐만 아니라 집에서나 학교에서 읽고 배울 때에도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례 가운데서 구원의 표와 인을 받습니다. 구원의 약속(복음 약속, 은혜 언약)의 눈에 보이는 표와 인으로서의 성례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자들(특히 일찍 죽는 영아들, 세례와 성찬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자들)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반드시 은혜의 방도에 매이시지는 않지만, 통상적으로는 성령의 구속 적용 사역에서 은혜의 방도들을 사용하십니다.


성육신과 흠없는 온전한 순종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유일한 중보자와 구원의 주로서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에 성령의 은사와 직분과 은혜의 방도를 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방도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 분리시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넓은 의미(포괄적 의미)에서 신자들의 교제(교통)이며 신자들의 어머니인 교회는 은혜의 방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정된 의미(좁은 의미)에서 은혜의 방도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을 세상의 처음부터 끝날까지 모으시고 그의 지체들로 온전케 하시는 일을 위해 그의 교회에 주신 말씀과 성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은혜의 방도’에 포함시키기 보다는 ‘말씀과 성례’를 통상적 은혜의 방도로 알고 이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개혁교의학 4권, 헤르만 바빙크 지음, 박태현 옮김, 부흥과 개혁사, 527-530쪽 참고). 개혁파 교회(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신뢰하는 교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그의 「개혁교의학 4권」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오직 말씀과 성례만이 은혜의 방편들로 여겨질 수 있다...하나님의 말씀이 성찬과 더불어 참된 의미의 은혜의 방편으로서 논의되는 때는 오직 목사가 공개적으로 설교할 때다...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보냄으로 인하여 설교된 말씀이 강조된다”고 하면서 그는 동시에 사람들이 교회에서 설교를 듣기 오래 전에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이 말씀을 접촉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성령은 단지 은혜 언약이 말씀의 봉사와 성찬의 시행과 더불어 퍼진 곳에서만 일하신다”(545쪽)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성경에 관하여) 1항(성경의 필요성과 종결성)과 6항(성경의 충족성)은 인간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 뜻을 자연 계시가 아닌 특별 계시로 나타내시고 그것을 기록해 주셨음을 말합니다. 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충족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영감으로 기록된 신구약 성경 말씀)은 그 자체로 충족한 은혜의 방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똑같이 명백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분명한 것도 아니지만, 구원을 위해 알고 믿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성경 이곳저곳에 분명히 제시되고 펼쳐져 있기 때문에 배운 자들뿐 아니라 배우지 못한 자들도 일반적 수단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번역되고 건전한 성경 해석의 법칙으로 해석되고 적용하게 하는 가르침(강설, 설교)이 필요한 것입니다.


충족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성례를 은혜의 방도로서 추가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의 방도로서 하나님이 그의 말씀(특히 그 말씀의 강설)에 성례(세례와 성찬)를 추가해 주신 것은 그의 말씀에 어떤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의 무지와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더욱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굳건하게 세워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거룩한 복음의 강설(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알려주는 말씀)로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굳세게 해주십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5문).


230205(고전1123-말씀과 성례와의 관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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