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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30820 내 영혼아, 하나님을 바라라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22일

시 42:1-11


시편 42편은 “고라 자손”의 시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편입니다. 고라의 가문은 광야에서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중책을 맞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라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역을 꾀했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땅에 삼켜져서 멸망을 받았습니다(민 1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고라의 가문에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고라의 어린 아들들을 살려두시고 그 가문이 계속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민 26:11). 그리하여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감사하며, 대대로 성전의 문지기(대상 9:17-19)와 찬송하는 자(대하 20:19)가 되어 성전의 여러 일들을 맡아서 봉사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특별한 은사를 받아 봉사하면서(대상 6:31-33), 여러 편의 아름다운 시편들을 기록했습니다(시 42, 44-49, 84-85, 87-88편).


시편 42편은 고라의 시편들 중에서 첫 번째 시편으로,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이 기도자는 자신이 처한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3-4, 9-10절). 둘째, 그는 그런 형편 속에서 자신의 소원과 결심을 아뢰며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1-2, 6-8절). 셋째, 그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고 자기 영혼을 향하여 권면하였습니다(5,11절).

자신의 곤고한 형편을 하나님께 아룀(3-4, 9-10절)

첫째로, 시편 기자는 슬픔과 탄식 가운데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잊혀지고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괴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9절). 또한 그는 원수의 조롱과 압제로 인해 슬픔 중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종일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3,10절)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물이 주야로 그의 음식이 될 정도였습니다(3절). 특별히 그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멀리 떠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는 자였습니다(4절).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집에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어서,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4절)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낙망하고 있었습니다(6절). 그는 영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침체되고 괴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경건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룀(1-2, 6-8절)

둘째로, 이런 속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며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1-2절). 그는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며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갈망했고 예배의 자리를 갈망했습니다. 이 갈망은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이 가지는 갈망은 아닙니다. 이 갈망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이미 알고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신자의 갈망입니다.


그의 영혼은 낙망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기억했습니다(6절). 그는 “내 영혼이... 낙망이 되므로, (그러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합니다”(6절)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히, 트홈, ‘깊은 물(샘)’, 시 33:7)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자기 위에 넘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욘 2:3 참조). 이는 그가 곤고한 중에 “주를 기억할 때”, 마치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하던 사슴과 같던 그의 영혼이 요단 땅과 헤르몬 산과 미살 산의 폭포 소리, 그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깊은 물(샘)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 하던 그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해갈함을 얻고 안식과 평안과 만족을 되찾게 된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이다”(8절). 우리의 영혼이 낙망이 될 때, 바로 그때야말로 우리가 더욱 우리의 곤고한 형편을 고하면서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내 영혼아,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5,11절)

셋째로, 시편 기자는 자기 영혼을 향한 권면으로 이 시편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우리의 신앙을 견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계속 살아가려고 하다가 만나게 되는 도전과 시련과 두려움과 슬픔을 만날 때에 우리 영혼을 향해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5,11절)하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은 질문으로 된 명령입니다. 이는 낙망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라는 강한 명령입니다. 낙망이란 실망하고 낙담하여서 마음이 완전히 꺾여있는 상태,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한없이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또한 불안이란 끊임없이 불평하고 투덜거리면서 마음에 쉼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마음, 생각, 내면)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싸움입니다(잠 4:23).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며 잠잠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시 48:14). 그러므로 낙망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마십시오.


둘째, 우리는 우리 영혼을 향해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바라라”로 번역된 히브리어(야할)는 “기다리라(wait)” 또는 “기대하라(expec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존하시는 하나님”, 곧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권능의 하나님,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이루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바라십시오.


셋째, 우리는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우리 자신을 향해 권면해야 합니다. 이는 시편 기자의 결심이면서 동시에 자기 영혼에게 명령하는 명령이자 모든 성도들을 향해 명령하는 명령입니다.

모든 경건한 신자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은혜 중에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은혜 중에 예배하고, 설교를 통해 빛과 힘과 위로를 얻고 성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면서 은혜 생활을 잘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그러한 영적인 태평성대를 누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신자가 신앙을 견지해 나가다보면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 이전과 같은 신앙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영적으로 괴롭고 침체하게 되는 때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눈물이 우리의 음식이 되기도 합니다. 시편 42편은 바로 그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어떤 말로 우리 자신을 다잡아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시편 42편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갈급하고 낙망이 되었을 때에, 우리의 곤고한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뢸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을 향해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할 것을 권면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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