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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40825 하나님의 어린양

요 1:29-34

     

누구든지 예수님을 참으로 바르게 알고 믿고자 한다면 예수님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곧 예수님의 위격(person)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영원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신 것과,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참 사람이 되신 분임을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곧 예수님의 사역(works)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가르치신 교훈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우리는 예수님의 위격과 사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멜랑히톤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의 혜택들(benefits)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들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위하여 순종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고,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 이것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가장 빛나는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이 호칭은 특별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훌륭하고 아름답게 함축하여 설명하는 호칭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이 호칭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어린양”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어린양”이라고 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유월절 어린양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양의 피를 자신들의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하심으로써 그들을 살리시고 구원하셨습니다(출 12:5-8).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와 죽음을 통해서 자신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구약시대 내내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상번제로 드렸던 어린양이 있었습니다(출 29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제사를 드릴 때에 그들은 어린양을 번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 제단의 불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했습니다. 예배자는 번제를 드릴 때에 어린양의 머리에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고 자기를 대신하여 어린양을 죽여서 그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양은 피 흘려 죽임을 당하고 그 몸은 제단 위에 불로 태워서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어린양은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시고 죽임 당하시고 십자가의 제사로 자기 자신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드리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어린양은 흠 없고 점 없는, 일년 된 어린양이어야 했습니다. 이는 죄 없으신 순결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히 4:15).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예수님의 호칭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어린양처럼 죄인들을 대신하여 번제물(대속물)로 오신 분임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 죄를 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간다”고 할 때 “지고 간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아이로”는 “짊어지다(carry along), 제거하다(take away), 없애다(remov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과 생명을 가져다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고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마치 어린양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피를 흘림으로써 구약 성도들의 죄를 담당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사야 53장의 어린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6-7). 세례 요한은 분명히 이사야 53장의 이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분,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라고 말했던 분이 바로 이 예수님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볼 때에, 인간의 죄를 온통 전가 받아서 그 죄 지은 인간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갔던 그 어린양이 보였습니다. 그 어린양들이 그림자였다면 예수님은 그 어린양의 실체였습니다. 구약시대에 무수히 많이 죽어갔던 그 어린양들의 피와 죽음과 제사가 끊임없이 가리키고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흘리실 피와 우리 대신 죽으실 대속의 죽음과 하나님께 단번에 드릴 십자가의 제사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모든 뜻을 함축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쉼을 얻고 안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오셨고,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오신 분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사 53:11; 히 9:28 참조).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하였습니다(29절). 이는 “내가 전에 너희에게 말하였던 분, 곧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실 유일한 분, 그불이 바로 이 분이니, 그를 바라보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르라!”는 촉구입니다(30절). 실제로 세례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아닌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였습니다(요 1:35 이하).


존 라일 목사님은 “우리가 그를 ‘세례 요한의 안목으로 보고’ 그를 ‘죽임 당한 어린양’으로 인정하여 그의 하신 일을 기뻐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존 라일, [요한복음 I], 108)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감사와 감격과 봉사와 충성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아는 데에서부터 나옵니다(벧전 2:24). 그는 지금 하늘 영광의 보좌 가운데 좌정하신 바로 그 어린양입니다(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이 호칭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호칭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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