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1-17
시편 90편은 모세의 기도로, 이 시편은 모세가 광야생활 중에, 아마도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드린 기도로 여겨집니다. 시편 90편은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드린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1-6절)
시편 90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절). 광야 어느 곳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처(영주처)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신 33:27 참조). 이 지상에 있는 거처들은 낡아지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땅이 생기기 전, 땅과 세상을 주께서 내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십니다(2절).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경점 같습니다(4절).
그에 비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짧고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모세는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인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신 말씀 그대로 육신의 죽음이 있을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필경에는 다 흙으로 돌아가게 될, 죽을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며 인생들을 향해서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3절).
모세는 인간의 죽음을 세 가지에 빗대어 묘사하였습니다. 첫째로, 인간의 죽음은 홍수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5절). 매튜 헨리 목사님은 “죽음은 늘 존재하는 대홍수”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은 홍수처럼 강력하고도 빠르게 밀려옵니다. 아무도 이 죽음의 홍수를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인생은 마치 잠간 자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잠이 들지만 곧 아침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빠르게 지나가고 우리의 죽음은 신속히 찾아옵니다. 셋째로,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6절). 사람들은 아침에 돋는 풀 같아서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곧 마릅니다(6절). 모든 육체는 다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벧전 1:24-25), 우리의 생명은 아침 안개와도 같습니다(약 4:14).
인간의 죽음과 하나님의 진노(7-11절)
그렇다면 인간의 죽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사람의 죽음은 사람의 죄에 대한 주님의 분노로 우리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주의 노에 소멸되는 것이고 주의 분내심에 놀라는 것입니다(7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십니다(8절). 죽음의 순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의 실체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시는 순간입니다. 죄가 아니라면 인간은 죽음을 경험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고 죽을 때에 우리의 날은 모두 사라지고, 우리의 일생은 일식 간에 끝납니다(9절).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절)라고 하였습니다. 혹 우리가 건강해서 백세까지 산다고 해도, 우리의 날들은 여전히 짧고,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며, 우리의 날들은 화살처럼 날아갑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 89:47)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단촉한 삶과 허망한 죽음은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위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에서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여호와의 진노의 능력을 알아야 할대로 알지 못하고 두려워해야 할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11절). 죽음이란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할 뿐, 죽음에 깃들어 있는 주님의 진노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이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오게 된 것임을 지금도 큰 소리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2-17절)
그렇다면 이렇게 죽음 앞에 서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날들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의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12절). 우리는 우리의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고, 죽음은 신속하게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깊이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단촉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뼘밖에 안 되는 날들을 주셨고, 우리의 일생은 주님 앞에 마치 없는 것과 같습니다(시 39:4-5). 지금 우리가 아무리 든든히 서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지고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 허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날들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이 지혜를 가지면, 우리는 지혜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될 것이고, 우리의 이웃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고, 자타의 복과 구원을 위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13절)라고 구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을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고 그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을 인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14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많은 곤고한 날들을 보낸 만큼, 기쁜 날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15절). 우리도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곤고한 날들을 지낼 때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해주시고 기쁘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밝히 보여주시기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밝히 나타내며 살게 해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는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고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16절)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 특별히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일들을 통해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손에 맡겨주신 일들을 견고하게 해주셔서 그 모든 일들을 우리와 우리 자손 대대로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17절).
우리는 죽음 앞에 서 있고 영원 앞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혜의 마음을 구합시다. 죽음은 홍수 같고, 우리의 삶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이 연약하고, 인생은 단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욱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가운데 더욱 밝히 보여주시기를, 그리고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하게 해주셔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통해 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밝히 나타내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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