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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Five Solas] 오직 은혜(엡 2:8)

최종 수정일: 2023년 11월 30일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능력과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베푸시는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더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상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에베소서 2장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 전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그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뻔했던 것이 아니라 죽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 2-3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 첫 사람 아담과 언약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그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아담과 아담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 대한 영적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간의 본성은 매우 건강하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조금 연약한 부분이 있으나 세월이 지나고 문명이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은 점점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백년 전, 천년 전 사람들과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비교했을 때,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도덕적인 상태는 이전에 살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아진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인간은 병들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나 질병, 가난과 굶주림 등 여러 문제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병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사람들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들을 거부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경은 모든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죽은 채 태어납니다. 죄 가운데 잉태되고 죄 가운데 태어나는 죄인은 하나님께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거나 하나님께 대한 바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들려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되살리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 죽었을 뿐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해 죽어 있는 죄인은 죽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죄를 짓는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로 죽은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3절에서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 철저하게 죽어 있는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에 대해서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은 노예의 상태에 있습니다. 무엇의 노예가 되었습니까?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벧후 2:19)고 하셨는데, 우리는 언제나 죄에게 집니다. 죄에게 져서 죄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창조하셨으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며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하고 위해서 살아갑니다. 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전적인 무능력 상태에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선처럼 보이는 일을 행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보일뿐 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선하다고 하여 하나님께도 선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선한 일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선해야 하지만, 사람의 최고, 최선의 행위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상과 마귀의 노예이기도 합니다. 2절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 풍속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세상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또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아갑니다. 마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귀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죄와 허물로 죽었고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며, 죄와 마귀와 세상의 노예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영적인 상태이며 인간의 비참의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인간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까요?


먼저 성부 하나님의 택하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셨습니다.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복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선택하고 예정하신 것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과 전혀 관계 없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까? 왜 하필 우리입니까? 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생각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실 때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착할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를 선택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첫째인 에서를 미워하시고 둘째인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어머니 리브가의 뱃 속에 잉태되었을 때 이미 하나님은 ‘내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롬 9:13; 말 1:2-3).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리라.”(롬 9:11)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가 자기 뜻을 따라 귀히 쓸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천히 쓸 그릇을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를 알리기를 원하셨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유기하셔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신 분인지를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과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창조주이시기에 그렇게 하실 권위와 자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셨는가, 왜 나인가를 묻기 전에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를 따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자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이란 본래 “어떤 대상이나 사람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시장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서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었는데,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것을 “구속”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와 세상과 마귀의 종 죄었던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으며 자유케 될 수 없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흘리신 보혈로써 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죄 사함과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셋째로 성령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혜택이 우리 각자의 것이 되도록 하시는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특별히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하나님께 대해 죽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마치 죽은 나사로를 향해 주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하실 때 성령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생명을 주셔서 그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는 설교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시며 믿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로 구원을 확신하게 하시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구속과 구속을 입혀주시는 사역을 통해 우리는 값 없이, 은혜로 죄사함과 양자됨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직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구원이 흔들릴 때를 만날 것입니다. 우리 안의 죄가 준동할 때, 율법의 거울에 비춰진 우리의 죄를 보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낙심되고 두려운 순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죄가 더한 곳에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죄를 이긴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하지 못할 정도로 흉악한 죄인은 세상에 없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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