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76) 요한계시록(1)

요한계시록 개관(1) |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하는 이유

요한계시록 1:1-8


요한계시록 개관은 2회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떤 유익이 있는지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은 다른 성경보다 더 어렵고, 잘못 이해하면 더 위험한 ‘특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요한계시록은 특별한 성경이 아니라 성경의 다른 책들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하여, 신약성경이 이미 오심(초림)과 다시 오심(재림)으로 바라보며 증거했던 그 메시지와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1:1)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 말씀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성경처럼 요한계시록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입니다. 한편 요한계시록을 가리켜 “예언의 말씀”(1:3)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언이란 말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종말에 일어날 어떤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요, 성경에서 예언이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이 “편지”(1:4)라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울서신, 공동서신과 같은 편지입니다. 즉 요한계시록은 당시에 이 편지를 읽을 독자들에게,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 관하여 이야기하려고 쓴 책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수신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했기에, 우리도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비밀 문서를 대하듯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이 어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을 읽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어렵고 무섭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어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까닭은 요한계시록에 사용되는 많은 ‘상징과 이미지’ 때문입니다. 요한은 왜 이렇게 많은 상징을 사용하였을까요? 그것은 당시 교회의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이 이 책을 기록했던 시기는 로마의 박해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시기, 주후 81-96년). 그래서 로마가 교회를 박해한다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박해가 따를 뿐만 아니라 검열로 인해 편지가 전달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편지를 받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편지의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 상징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런 상징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요한계시록은 아주 어려운 책이 됩니다. 그래서 상징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사실 요한계록의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상징들은 대부분 구약성경에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라도 요한계시록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을 사용하였고, 간혹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을 사용할 때는 본문에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4장에 나오는 네 생물은 에스겔 1, 10장에, 6장에 나오는 말과 말 탄 자는 스가랴 1, 6장에 있는 상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를 ‘바벨론’으로 묘사하는 등 숫자와 장소, 사물, 사람 등 구약성경의 상징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내용들은 1세기 유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는 익숙하고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징의 의미를 이해해도 요한계시록은 여전히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많은 곳에서 심판을 두렵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은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심판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과 세상의 권력자들, 그리고 세상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은 교회를 구원해주신다는 말씀과 동일하기에, 이 말씀은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어렵고 무서운 책이라 생각하여 읽기를 피합니다.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하여 가르친 것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잘못 읽으면 위험한 책이라는 편견에 빠진 것입니다. 잘못 읽으면 위험한 것은 모든 성경이 동일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앞에 있는 65권의 성경보다 더 어렵고 두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은 시작하고 마칠 때(1:3, 22:7), 이 책의 말씀을 읽고 듣는 자들, 이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이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유익


첫째, 요한계시록을 잘 알아야 성경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성경 전체의 서론으로 볼 수 있다면 요한계시록은 성경 전체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구속 계획이 씨앗처럼 들어 있고, 그 씨앗들이 성경 전체를 통해 자라나다가 마침내 요한계시록에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창세기 1-2장과 요한계시록 21-22장을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에덴동산이 새에덴동산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요한계시록을 잘 알면 교회와 세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기도 하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고 부패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박해와 유혹과 싸워 승리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에는 교회와 세상의 영적 전투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통해 교회는 세상의 박해를 받을 때마다 강력한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되고, 교회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때에는 큰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와 세상의 본질과 결말을 선명하게 제시함으로 성도에게 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제공해 줍니다.


셋째, 요한계시록을 잘 알면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요한계시록은 어렵고 잘못 해석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통 교회는 잘 가르치지 않으려 하고, 반대로 이단과 사이비 집단들에서 요한계시록을 더 많이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 쉽게 넘어가기도 하고,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분명하게 답변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알면 이단과 불건전한 집단에 빠지지 않고 바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라고 생각했었나요? 오늘 공부를 통해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조회수 54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