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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주기도문2]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1. 우리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입니다


120.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 명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의 첫머리에서부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셨는데,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으며,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 63:16).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니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1-13).

1) 아버지

자녀들이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마 대부분의 경우, 부모일 것입니다. 그때 자녀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어린 자녀들 가운데 부모를 찾을 때, “저기”, “아주머니” 혹은 “아저씨”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또 실제적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간구할 때, 이웃집 아저씨에게 부탁하는 것과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기도에 있어서, 간구의 “대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 주는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그 관계가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본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적인 공로”로 하나님을 “아버지”(파테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에서 “아버지”라는 명칭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모든 자녀들에 대해 갖는 관계를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단지 창조주, 전능자, 왕이자 주님일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최고 계시”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이것은 일종의 비유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은 이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가족” 관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호칭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 관계 안으로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옛날과 달리 지금은 그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지 않고, 어떤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버지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때, 그런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 이 세상의 아버지를 생각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잘못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 육신의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 못한 “진짜 아버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그것을 알려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온전히 알게 하시고, 자녀 됨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2) 우리

또한 이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적인 기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기도가 자기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주제입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도란 본질적으로 “교회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의 처소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가장 우선적으로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합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창조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는 기도문인 것입니다.

2.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121.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하나님의 천상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을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대하 6:18-19).

“그런즉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32).

1) 천상의 위엄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늘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지지 않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무한과 영원과 불변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요리문답의 표현을 따르면, 하늘은 “하나님의 위엄”을 표현하는 왕적인 표현입니다(시 11:4).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곧 그분이 “지극히 높으신 왕”이라는 뜻입니다.

2) 전능하신 능력

우리는 기도할 보통 눈을 감습니다. 왜 눈을 감을까요? 요리문답을 따르면, “하나님의 천상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계신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갑니다. 결국 기도는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기에 영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전능하신 능력으로 응답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이신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우리를 살리셨으며,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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