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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kjoon

[2023 여름성경학교 1]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곳이에요


본    문 에베소서 5장 25~27절(행 2:42-47; 히 10:25)
읽을말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같이(에베소서 4장 25절).

벨직 신앙고백 제27조 <거룩한 보편적 교회>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면서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인치심을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회중이요 모임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의 처음부터 있었고 끝날까지 있을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백성 없이 계실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는 매우 작아서 마치 소멸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온 세상의 분노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보존됩니다. 예를 들면, 아합의 학정 동안에도 주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친히 보존하셨습니다(왕상 19:18).
그러므로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한 지역이나 특정한 사람들에게 국한되거나 묶이거나 제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온 세계에 퍼져 있고 흩어져 있으며, 그러면서도 이 교회는 여전히 믿음의 능력으로 동일하신 한 분 성령 안에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

몇 해 전, 교회 안에는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안 나가 성도’를 뒤집어서 만든 말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세속성자를 위한 수요모임”에서는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에 상처를 입거나 교회에 대한 불신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학과 삶을 나누기도 하고, 이웃을 위한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두고 최근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혹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교회 다니지 않고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고,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할까? 그냥 혼자서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또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고, 커피숍 같은 데 모여서 말씀도 나누고 삶도 나누면 되지 않을까요?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을까요? 그리고 교회란 대체 어떤 곳일까요? 건물에 십자가만 달면, 000 교회라는 간판만 달면 교회일까요? 또 목사님이 설교하시고 예배드리면 되는 것이지, 성경은 교회 안에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과 여러 가지 제도들(예를 들면, 교회법)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것이 교회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데, 왜 이렇게 세상의 교회들에는 문제가 많은 것일까요? 더 많은 죄가 난무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더 상처받아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교회, 꼭 다녀야 할까요? 우리가 교회를 꼭 지켜야 할까요?

[1과]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곳’이에요”

흔히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눈으로 보이는 교회들의 모습을 근거로, 교회가 어떠한 곳인지 정의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는 것이 무엇을 말하든지, 교회가 어떠한 곳인지에 대한 정의는 오직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회에 대한 벨직 신앙고백서의 조항 역시 ‘믿음’의 조항입니다. 특별히 벨직 신앙고백 제 27조는 교회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면서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인치심을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회중이요 모임입니다.

영어로 교회(church)란 단어는 ‘주님께 속하는 것’이란 의미를 가진 헬라어 큐리아케(kuriake)로부터 유래합니다. 이 단어는 교회가 주님의 피로 사신 바 되어 주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회에 해당되는 단어는 에클레시아(ecclesia)입니다. 이 단어는 ‘소집하다’를 의미하는 동사들의 파생어로써, ‘모임’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아 모인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유대인의 모임과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에클레시아)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신약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을 대체하게 되었습니다(벧전 2:9).

그러므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 교회란 ‘모든 택함 받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여기에는 단지 지상의 모임만이 아니라 하늘의 모임도 포함하며, 과거와 현재의 모임만이 아니라, 미래의 모임까지도 포함합니다. 이러한 교회에 관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 전체로부터 특정한 사람들을 생명으로 선택하십니다. 이들, 곧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 가운데서, 성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모으십니다. 이러한 성자 하나님의 사역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또, 성령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을 새롭게 하시고, 교회 안에서 성장하며 자라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모든 복들, 곧 소명과 중생, 믿음과 칭의, 성화와 영화의 모든 복이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요?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 준 우리의 부모님은 어떻게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요? 누군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왔고, 누군가 이 땅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우리는 혼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부 키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벨직 신앙고백 역시 제28조(교인의 의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총회와 회중이 구원 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그것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지위나 상태에 있든지 혼자 있는 것으로 만족하여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함을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어 사기를 원한다면, 그 물건을 파는 합당한 곳으로 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보증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리는 곳에서 얻을 수 있도록 정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참된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모임, 곧 외적인 교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외적으로 교회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더불어 성사들의 교회 가운데 있을지라도,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의 본질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믿음’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라고 이름 불리는 이유는,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들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핵심적인 요소를 형성하고 교회에 본질을 제공하는 신자들 때문에 그렇게 불립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자들의 모임’이며, 그렇게 지속됩니다.

반대로, 어떠한 이유로 모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그러나 언젠가, 마지막 날에 ‘모든 택자’들이 ‘하나’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오늘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교회로 자신의 백성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 참고자료

개혁교의학 4권. 헤르만 바빙크 지음. 박태현 옮김. 2013, 서울: 부흥과개혁사.

(개혁교회 교리교육과 설교를 위한) 벨직 신앙고백 해설. 김준범. 2023, 서울: 고려서원.

벨직 신앙고백서 해설. 클라렌스 바우만 지음. 손정원 옮김. 2016,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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